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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원장 - 누가복음 강해2
글쓴이 대신대학교 등록일시 2007-11-19 00:00:00 조회수 1085
돌로 사람 만들기 - 누가복음 3:7-14 오늘 우리 사회를 가리켜서 총체적 부패의 사회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21세기에 대한 비전과 소망을 장미빛 구호로 외치고 있지만 실상 오늘의 상황은 영적인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우리 시대는 영적인 암흑시대입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통신혁명으로 세계가 하나의 방으로 축소된 듯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한 부패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처럼 영적 어두운 시대가 된 것은 바로 진정한 선지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파숫군의 사명을 가진 주의 종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세속주의와 타협하고 모두가 인본주의를 예찬하고 모두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고 모두가 돈 때문에 양심을 팔아버렸기에 세상은 철저히 어두워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라기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지활동을 끝낸 후 400년 만에 새로운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아니라 대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6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 모세를 통해서 이루었습니다. 물론 이 본문에서는 세례요한의 위대성 보다, 그의 사명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위대한 복음의 시대, 은혜의 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출현과 그의 사명과 그의 메시지의 내용은 이미 600여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예언되었습니다. 이 성경을 쓴 의사요, 역사가인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현과 설교를 하나님의 구속사의 위대한 틀 속에 있음을 말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원 후 27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12세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율법사들과 율법논쟁을 벌이던 때로부터 18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요단강 강변에 흡사 사자가 울부짖는 것처럼 표호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요한은 광야의 들판에서 불같이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의 설교는 하나도 인기없는 설교였습니다. 요즘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다 떨어질 설교입니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설교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설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행복을 설교할 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비결을 가르치는 설교를 좋아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죄를 지적하는 설교,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야의 외치는 소리, 곧 세례 요한의 설교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설교가 아니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설교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정치가이건, 법률가이건, 재벌이건, 지성인이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무차별 난사했습니다. 즉 생명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헤롯 왕실의 음모와 부패가 지적되자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권과 이른바 기득권 세력, 부정 부패와 음란과 사치와 방탕한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의 설교를 통해서 심각하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기득권 수호와 왕의 보위를 지키기 위해서 광야의 외치는 설교자 요한을 죽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물론 요한은 자기의 생명이 어찌될 것인지를 알고도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전령자로서 그는 고독한 설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세례 요한이 비록 외롭게 말씀을 증거했지만 사람들은 광야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치권에 인권을 박탈당한 수많은 민초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설교를 듣기 위해서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요한의 설교를 듣고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지자가 나타나 그 암흑시대에 빛을 던진 것에 대해서 감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으러 온 그룹들 가운데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선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 불려지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의 정치 지도자들과 연합하고 기득권 수호를 위해 뭉치고 의식과 형식적인 종교의 틀만 갖고 있지, 영적인 상태는 철저히 어두움 그 자체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먼저 믿는 종교 지도자들이 뒤집어져서 회개하지 않고는 민족도 나라도 새롭게 될 수 없음을 외쳤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의 틀은 회개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운동은 바로 회개운동과 말씀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와 민족은 어디로 갑니까? 외견상으로는 IMF 이후에 어려움도 겪었고 실업자가 많고 비정규직의 어려움도 많아 경제가 잘 안돌아간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에 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윤리적, 영적 타락은 극에 달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종교적 지도자들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철저한 외식주의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하고 이중 인격적으로 살아왔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천국은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회개란 말씀과 성령을 따라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짓과 허위와 이중인격의 사람이 옛 생활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악한 습관들을 과감히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정치권의 부패와 관리들의 부패를 지적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시대의 선지자가 없기 때문이요, 이 시대의 선지자적 설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교인들의 숫자나 늘리고 기득권을 누리면서 안주하려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선지자적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정치권과 금융권과 법조계, 그리고 문화계, 교육계가 썩어서 문드러지고 냄새가 나도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성도들까지도 기득권 사상을 가졌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뽑은 선민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 백성은 멸망의 선봉이요, 이방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만이 종교적 특별한 사명을 가졌기에 그리고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이기에 구원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겉만 번지레하고 속은 썩어 냄새 나는 송장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들의 그릇된 생각에 찬물을 끼얹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즉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눅 3:7-9)고 했습니다. 실은 간담을 서늘케 하는 설교였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구원을 얻는 것은 결코 혈통이나 가문이나 전통이 아니라 회개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기득권 사상을 송두리째 파괴시킨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마치 광야에 뒹구는 돌멩이처럼 아무 쓸모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거져주시는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흔히 우리가 세례 요한의 강직한 설교는 마치 율법주의적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세례 요한의 설교는 인간의 부패성, 제도적인 부패, 정치적, 종교적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결국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라는 진리입니다. 즉 그것은 오직 은혜(Sola Gratia)의 복음입니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의 메시지 그리고 사도바울의 메시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돌로도 사람을 만들고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그것이 바로 복음이요, 그것이 은총이며, 그것이 바로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가 아무리 죄악으로 소망없는 자리에 있다고 해도 철저히 회개하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시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향한 메시지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생동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면, 복음은 이스라엘의 독점물이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복음이란 사실입니다. 그것은 광야로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으러 나온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만의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 곧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시의 수용자로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에게까지 증거하는 책임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서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인 줄 오해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고,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없는 자에게 복음의 빚진 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포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스스로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말하면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기득권 의식,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양 말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이처럼 부흥시켜주시고 성장시켜 주신 것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선교적 사명을 감동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복을 주셔서 세계선교에 눈뜨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는 명실공이 오대양 육대주에 선교사를 파송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는 자기 안주에 빠져 있는 미이라 같은 교회나 화석화된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 선교를 위해서 일하는 생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끝으로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는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회개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반드시 맺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됩니다. 그런데 회개한 후에는 회개에 걸맞는 합당한 삶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교리가 윤리를 동반하지 못할 때 그것은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는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고 세금을 거두는 자는 법대로 하고 뇌물을 먹지 말고 군인들은 사명에 충실해야지 권력을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회개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요, 현실입니다. 세례 요한의 광야의 소리, 그 설교를 오늘날 귀담아 듣고 양심을 회복하는 교회, 회개할 줄 아는 교회, 열매 맺는 행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천년 전 형식화, 의식화된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불같이 죄를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은총의 복음을 선포한 세례 요한 같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악을 철저히 지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총이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세계교회는 세례 요한 같은 선지자적 설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잠자는 교회들을 깨워야 합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아무 쓸모없는 돌맹이 같은 존재라고 해도 그것을 아브라함의 자녀로 만들 수 있다는 그 충격적인 은총의 설교가 이 시대에도 필요합니다. 〈돌로 사람 만들기〉는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이며 창조사역입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때 흙으로 사람 만들기에서 증명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적인 사람이 도리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습관화되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적 발상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지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은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은총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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